1983년 5월부터 1997년 1월까지 생산했던 현대자동차 후륜구동 중형 세단. 쏘나타 1세대 격으로 쏘나타가 스텔라와 공유하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사실상 같은 차종으로 봐도 무방하다.
자가용은 쏘나타 2세대가 등장한 1992년 초까지 생산되었다. 판매량의 대부분은 80년대에 몰려 있지만, 택시 모델은 1997년까지 생산됐다.
한 동안 현대자동차에서 라이센스 생산하던 코티나가 포드와 기술 제휴 재계약 및 합작사 설립에 실패하자 더이상 생산이 불가능했다. 대신 미쓰비시와 새롭게 제휴하면서 한숨을 돌리게 된다. 현대자동차는 코티나의 후륜구동 플랫폼을 기반으로 Y카라는 코드네임인 새로운 승용차를 만들었다. 차체 디자인은 이전에 포니를 디자인했던 이탈리아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맡았다. 기존 승용차에 비해 넓은 공간과 편의 장비를 내세워서 꾸준히 팔려 나갔으며, 이는 훗날 쏘나타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자동차로 부상하는 토대가 된다.
비록 출시 초반에는 좋지 않았지만, 이래저래 현대자동차 역사의 한 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장수 모델이다. 현대자동차가 1980~90년대에 생산한 마지막 후륜구동 세단으로 2008년에 제네시스가 등장하면서 스텔라의 뒤를 잇게 된다. 그리고 현대자동차 후륜구동 세단 계보는 제네시스에서 이어지고 있다.
쏘나타 1세대(Y1)는 스텔라(Y1)의 고급형 버전이었다. 코드명이 동일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현대자동차 측에서도 스텔라와 쏘나타를 같은 차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외관도 기본적으로 똑같았고 단지 크롬 몰딩 장식이 더 붙어 있다는 정도의 차이만 있었기 때문에 일반인들도 스텔라와 쏘나타를 잘 구별하지 못했다. 당시 쏘나타를 샀는데 주변 사람들이 다들 스텔라라 불러서 마음의 상처를 입은 차주들이 많았다. 특히 스텔라 APEX나 스텔라 88 같은 상위 트림이나 후기형은 쏘나타와 구별이 쉽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스텔라 1세대는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소나타 1세대는 실패했다. 그렇게 고급형 소나타는 사라지고 대중형 스텔라가 살아남아 2세대로 이어졌지만 2세대의 이름이 스텔라가 아닌 쏘나타로 정해진 것은 외국 바이어들이 쏘나타를 원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쏘나타 1세대는 1985년 11월 4일 처음 출시되었다. 당시 현대자동차의 FR 중형세단인 스텔라를 기반으로 하여 4기통 1.8과 2.0리터 미쓰비시 시리우스 엔진을 올리고, 크루즈 컨트롤, 전동 시트 등 당시로서는 고급 편의 사양을 탑재 하고 외관에 크롬 몰딩을 대거 사용하여 스텔라를 고급화한 버전이다. 마르샤의 직속 선배격이라 하는 사람도 있는데, 마르샤는 최소한 쏘나타와 외관 디자인은 달리했지만 Y1 쏘나타는 스텔라와 외관 디자인조차 동일했다. Y1라는 코드명 자체가 스텔라의 것이다. 따라서 1세대 쏘나타는 스텔라와 같은 차로서 그 상위 트림에 가까우며, 실제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렇게 인식했다. '스텔라의 상위 트림에 쏘나타라는 다른 이름을 붙여서 판 것이다'라고 하는 편이 정확할 지도 모른다.
로얄 시리즈가 점령하다시피 한 중대형 고급차 시장에 도전했으며, 경쟁모델로 겁도 없이 로얄 살롱을 지목했다. 당시 현대자동차의 중형차 모델인 스텔라는 스펙상 로얄 프린스 시리즈와 큰 차이는 없었지만 79년 출시 당시부터 고급차라는 인식이 분명했던 로얄 시리즈와 달리 스텔라는 프레스토, 포니에서 이어지는 대중차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이러한 전략이 성공하여 스텔라는 당시 중산층을 공략하여 큰 성공을 거두긴 했다. 또한, 현대자동차는 쏘나타 출시 8개월 후에는 그랜저를 출시하여 최고급 대형차 시장도 결국 장악해 나가게 된다. 하지만 현대자동차의 톱 모델인 그라나다와 스텔라라는 커다란 갭 사이에서 로얄 시리즈는 여전히 건재했고, 이 시장을 차지하기 위해 출시한 차량이 바로 스텔라를 고급화한 1세대 쏘나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그랜저가 출시되기 1년 전인 그 시기에는 그라나다의 판매량은 많지 않았으며 중대형 고급차하면 대우 로얄 시리즈라는 선입관이 컸고, 쏘나타는 스텔라와 똑같은 차체에 엔진과 편의장치만 변경한 상태여서 소위 1,500cc 차량인 스텔라와의 차별성을 갖추지 못했다. 애초에 스텔라와 같은 차체인 만큼 대우 로얄 시리즈와 비교했을 때 차체 크기에도 열세이다 보니 사실상 실패한 모델이었다. 또한 가격도 당시에 고가에 속해서 판매량이 높지 않았다.
당시 로얄 살롱 2.0 자동변속기 사양이 1,278만원인데, 쏘나타 2.0 자동변속기 사양이 1,298만원으로 로얄 살롱보다 차체 크기는 작으면서 가격은 더 비쌌다. 그라나다가 단종되었을 무렵(1986년 1~2월)에는 자동차 수입 자유화가 실시되기도 이전이었던 만큼 잠시나마 국내 최고가 승용차로 등극하기도 했다. 하지만 쏘나타 출시 5개월 후인 1986년 4월 당시 판매량은 하루 평균 27대로 의외로 로얄 살롱의 하루평균 32대와 크게 차이나는 수준은 아니었다. 사실 이렇게 보면 쏘나타의 판매량이 로얄 살롱에 크게 밀리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에게 안 팔리는 차, 쉽게 보기 어려운 차로 인식된 것을 보면 실제로는 쏘나타가 많이 굴러다녔지만 대부분 스텔라로서 인식되었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쏘나타 출시 5개월 후인 1986년 4월이면 이미 대우에서는 로얄 살롱보다 상급의 고급차로 트립 컴퓨터와 전자제어식 엔진(EFI)을 장착한 로얄 살롱 슈퍼를 이미 내놓은 시점이고 기존의 로얄 살롱 구매층들이 로얄 살롱 슈퍼로 대거 옮겨가던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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